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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AI의 발전 속력은 급격히 올라가고 있다. 이제는 ‘될까? 안 될까?’를 고민하기보다 ‘대부분 되는데, 얼마나 잘될까?’를 이야기하는 흐름으로 넘어간 듯하다. 이런 발전 속력은 AI 서비스를 공급하는 기업의 CEO들마저 긴장시키고 있다. 반면 지금의 걱정이 지나치며 AI의 발전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다 갑자기 이런 이야기가 떠올랐다. 실화인지는 모르겠다. 한 신발 판매원이 아프리카에 가게 되었다. 그곳의 부족민들이 신발을 신지 않는 것을 본 판매원은 아프리카를 엄청난 시장이라고 생각했다. 판매원의 부단한 노력으로 부족민들은 신발을 신기 시작했다. 나뭇가지와 돌 위에서도 거침없이 걸을 수 있었던 굳은살 있는 발은 점차 신발에 익숙해졌고, 조금씩 말랑한 발이 되었다. 그렇게 부족민들은 어느 순간 신발이 없던 시절로 쉽게 되돌아가기 어려워졌다.
조금 더 생각해 보자. 이제 부족민들은 과거에는 지불하지 않았던 신발 비용을 앞으로 계속 지불해야 한다. 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다른 것을 아끼거나 더 많은 일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신발만 필요한 것도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양말도 필요할 것이고, 신발을 관리하거나 새 신발로 교체하는 비용도 생길 것이다. 그리고 신발은 언제든 일어나 걸어 나갈 수 있었던 굳은살도 조금씩 가져갔다. 굳은살이 있던 시절에는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특별한 준비 없이 그냥 걸어가면 되었다. 하지만 얻은 것도 있다. 부족민들은 이전보다 더 먼 거리를 편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굳은살만으로는 걷기 어려웠던 곳에도 갈 수 있게 되었고, 더 많은 활동을 하거나 더 많은 일을 할 수도 있게 되었다.
AI는 우리에게 이런 신발 같은 존재가 아닐까?
AI의 강력한 인지와 인식 능력이 발전하면서 우리는 생각하는 과정의 일부를 점점 더 AI에게 맡기고 있다. 정보를 찾고, 정리하고, 비교하고, 때로는 판단의 초안까지 AI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사유’라는 굳은살이 조금씩 말랑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유(思惟 생각할 사, 생각할 유)는 대상을 두루 깊이 생각하거나 인간의 이성을 사용해 개념과 판단, 추리를 만들어가는 생각의 작용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어떤 답을 얻기 위해 직접 자료를 찾고, 서로 다른 정보를 비교하고, 틀린 생각을 고치고, 때로는 한참을 고민해야 했다. 지금은 그 과정 가운데 상당 부분을 AI에게 맡길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히 인간의 능력이 줄어드는 과정이라고만 볼 수도 없다. AI의 강력한 인지와 인식 능력은 동시에 인간이 볼 수 있는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혼자서는 접근하기 어려웠던 수많은 정보와 관점을 빠르게 살펴볼 수 있게 하고, 서로 다른 지식을 연결하며, 자신의 생각을 더 깊게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즉, 인간의 사유 일부를 대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간의 사유가 도달할 수 있는 범위를 넓히고 있는 것이다. AI 서비스 비용을 지불하고 있더라도 그 비용 이상의 것을 해낼 수 있다면 그것 역시 반드시 부당한 거래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반드시 구분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고 생각한다. ‘신발 = 걷는 능력’은 아니라는 것이다. 신발에 익숙해진 발이 신발 없이 걷고 활동하기 불편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당장 나만 해도 지금부터 신발 없이 살아가라고 한다면 상당히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신발이 사라지면 내 두 다리와 발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신발 없이도 걸을 수 있는 신체와 능력은 여전히 나에게 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AI를 둘러싼 속도 조절론도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신발을 계속 신는다고 어느 날 인간에게서 걷는 능력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신발 없이 걸어야만 ‘진짜 인간으로서 걷는 것’도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발을 신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사용하려는 신발이 정말 나의 쓰임새에 맞는지를 판단하는 일이다.
걷기 위한 신발인지, 달리기 위한 신발인지, 산을 오르기 위한 신발인지에 따라 필요한 신발은 달라진다. 신발이 나의 쓰임새와 맞지 않거나, 약속한 만큼의 품질과 신뢰를 주지 못한다면 그때 필요한 것은 더 좋고 더 비싼 최신 신발을 계속 찾아가는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잠시 신발을 사는 것을 멈추고, 내가 왜 이 신발을 필요로 했는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반대로 자신의 쓰임새에 맞고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신발이 있다면 굳이 그것을 거부할 이유도 없다. 그 신발을 신고 우리는 이전보다 더 멀리 가고 더 많은 것을 보며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도구가 강력하면 종종 그 도구가 능력의 전부인 것 마냥 착각하고 만다. AI는 매우 강력하지만 그럼에도 도구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하고자 하는 것과 도구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놓치지 않고 계속 묻는다면, AI의 발전 속력에 압도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AI가 없던 시절로 후퇴하지도 않는 균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이미지는 구글 제미나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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