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벌써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홀로 계신 외할머니, 어머니, 미국에 계신 막내 이모... 시간이 갈수록 서로가 볼 기회는 줄어들기에 난 어머니에게 페이스북을 만들어드렸고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공유할 기기로 아이패드 4를 사드렸다. 잘 쓰고 계신다. 외할머니 당신께서 아이패드에 찍힌 사진을 보면서즐거워 하시고 그걸 보는 어머니도 좋아하시고 미국에서 함께 할 수 없었던 이모는 외할머니의 사진을 보며 기뻐하시고... 이런 것이 IT로 할 수 있는 것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난 이것이 노트북에서도 이어지게 노트북에 페이스북 즐겨찾기를 추가하고 계정을 만들고 로그인을 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 제가 살펴볼 만한 곳, 기능이 있을만한 곳은 다 찾아보았지만 못 찾았습니다. 혹시 알고 계신 분은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위의 사진처럼 알 수도 있는 사람기능 때문이다. 이 알 수도 있는 사람은 보다시피 화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문제는 이것을 없앨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모가 알고 있는 사람 + 친척(이모 딸)이 알고 있는 사람 + 내가 알고 있는 사람(나와 친척은 친구 관계)이 더해져 수백 명의 명단이 알 수도 있는 사람에 떠버렸다. 지워도 지워도 끝이 없다. 수십 명을 지웠으나 수백 명이 남아있다. 이 기능을 비활성화하는 곳은 찾을 수가 없으며 페이지에 접속할 때마다 남아있다. 저 리스트의 99.9%는 어머니와 알 수도 관계도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알 수도 있는 사람이라며 계속 표시되며 화면의 핵심 영역을 차지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가볍게 지우다가 수십 개를 지우고 주커버그이 쥐새끼 같은 놈이라 말하다 결국 로그아웃을 하고 즐겨찾기에서 페이스북을 지운 뒤 아이패드에서 보시라고 권했다.
나도 벤처에서 기획을 하고 있고 서비스를 설계한다. 그런 의미에서 주커버그에게 쥐새끼라고 욕하는 것이 불편하기는 하다. 하지만 쥐새끼라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다. 이것은 그 의도 때문이다. 사용자가 선택할 수도 없는 기능인데 그 기능이 사용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인적 네트워크의 크기를 늘려 최대한 페이스북의 플랫폼 내에 가두려고 하는 의도가 너무나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알 수도 있는 사람, 내가 잊고 있었으나 찾고 있었던 사람을 찾아서 알려줄 수 있는 유용한 기능이기도 하지만 그것 또한 최종 판단은 사용자의 몫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닐까?
물론 기업이 수익모델 없이 무료로 모든 것을 제공할 수는 없다(페이스북은 광고 모델이 핵심이다). 하지만 사용자가 충분히 편리하게 자신의 의도대로 사용하면서 필요한 것을 서비스의 플랫폼 내에서 해결해가며 수익을 올리는 것이 가장 정석이고 합리적이며 무리 없는 발전이다. 어렵기도 하지만 지속적인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외면하고 밀어내기 식의 서비스를 하면 과연 그걸 참아내며 쓸 사용자가 얼마나 될까? 물론 페이스북은 여전히 많이 쓰고 자본 여력이 되며 잠재력이 있는 기업이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며 페이스북에 대해 이런 건 좀 아쉽다고 생각하던 것들이 이제는 이래선 더 발전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백성 없는 왕이 없듯이 사용자 없는 기업도 없으니까.
* 이미지는 서비스 캡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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