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고려의 끝에서 유교를 기치로 나선 국가다. 그만큼 양반이라 불리우는 사대부들과의 군신관계가 국가의 중요한 시스템이였다. 조선초 혼란의 시기가 지나가고 한국사에서 최고의 성군이라 일컬어지는 세종의 시절을 거치게 된다. 독자적인 문화와 국방에 힘을 쏟고 민생을 돌보던 태평성대의 시절. 이 시절은 신하들을 제압할 수 있는 현명함과 지략 그리고 덕을 갖춘 국왕과 유교의 신념을 바탕으로 왕을 견제하던 신하들 사이에 균형이 형성되면서 가능했다.
하지만 이 균형은 수양대군의 야망에 의해 뒤틀리게 된다. 정통성이 없는 자는 자신의 세력을 만들어 그 힘으로 자리를 탈취해야 했으므로 근본 이념에 충실하기 보다는 재물을 자신의 세력에게 나누어 주고 그들을 자신의 편으로 묶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 당연히 백성의 삶은 없었다. 반대하는 자들에게는 언제나 역적도당이라는 오명과 사약 또는 사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 후 왕은 백성을 돌보기 위한 하늘이 내려주는 자리가 아닌 언제든지 힘이 있다면 뺏을 수 있는 자리로 전락한다. 다만 유교의 나라답게 무력으로 하기에는 명분이 없었다. 혁신을 위한 그리고 민생을 위한 정치를 할 때마다 수구 세력과의 마찰은 피할 수 없었고 전제왕권 시스템에서 그러한 시도를 원천적으로 막는 길은 지도자의 죽음 뿐이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독살이다. 아팠다. 그리고 병으로 죽었다. 증거는 없애면 그뿐이다. 이러한 이유로 독은 조선시대 왕권 찬탈의 가장 단골메뉴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어의는 언제나 훌륭한 조연을 맡았다. 어의의 진단서는 좋은 명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잘못끼워진 단추는 문종을 지나 단종, 예종, 연산군, 인종, 선조, 소현세자, 효종, 경종, 정조, 사도세자, 효명세자, 고종 등에게 미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시련을 겪을 때마다 조선은 쇠락해간다.
물론 어떤 이는 이 책이 정사가 아니라고 해서 이러한 주장에 반대할지 모르나 조선시대 만큼 기록이 풍부했던 시대도 없다고 본다. 그나마 기록이라는 것이 체계화된 시대가 아닌가? 승자의 시선 뿐만 아니라 그 이외의 시선에도 주목한다면 보다 실체적인 진실에 가까워 질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적법한 절차가 아닌 쿠데타에 의해 집권된 이들이 한 것은 과거 조선시대와 다르지 않다. 반대파를 국가 반역세력으로 몰고 사형 내리기를 밥먹듯이 하였으며 자신의 패거리들에게 이권을 주어 자신의 위치를 더욱 공고히 했다. 그리고 끊임없는 불안감 조성으로 자신들의 등장을 정당화 했다...
진실을 아는 자만이 반복되는 위협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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