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 기업은 돈과 인력이 풍부하다.
2등 기업은 1등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의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3등 기업은 1등의 돈과 인력도 없고 2등 만큼의 자기 영역도 없다.
그럼 3등 기업이 할 수 있는 것은 뭘까?
오늘의 이야기는 그에 대한 것이다.
대우 일렉트로닉스는 최근 신제품을 내놓았다. 세탁기다. 그것도 벽에 거는 세탁기.
관련 기사 - 대우일렉, 3kg 벽걸이 세탁기 `미니` 출시(링크)
1등의 돈과 인력이 없고 2등의 영역 확보가 없는 3등이 할 방법은 오직 아이디어로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다. 그래서 1등과 2등이 아직 장악하지 못한 영역을 확보해 자신만의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3등의 생존법이다. 만약 돈과 인력이 부족한 3등이 1등과 2등의 저가 마케팅을 따라 하거나 무리한 확장을 한다면 그 충격을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생존법은 삼성전자와 LG전자가 확고한 영역을 가지고 있는 가전 영역에 진출하면서 만도 위니아가 딤채라는 상품으로 김치 냉장고라는 영역을 그리고 3등 LG U+가 SKT와 KT 사이에서 생존하기 위해 인터넷 전화 My 070을 해야 했던 것 등 많은 사례가 있다.
* 검색에 따르면 최초의 김치 냉장고는 위니아 딤채가 아니라 LG전자의 전신 금성사의 83년 제품이라고 한다(관련 블로그 - 링크). 하지만 우리가 iPad라는 제품의 최초를 LG전자로 기억하지 않듯이(관련 페이지 - 링크) 최초라는 것과 카테고리를 완성하고 정착시킨 것은 달리 보아야 한다. 관련 내용은 아래에 다시 나온다.
그렇다면 벽걸이 세탁기 출시라는 것은 어떤 환경을 바탕으로 나왔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첫 번째는 사회 환경의 변화고 두 번째는 옷의 특성 변화에 둘 수가 있다.
우리의 생활 방식은 변하고 있다. 특히나 인구 구조의 변화에 따른 주거 형태의 변화, 그리고 주거 형태의 변화가 가져오는 주거 문화의 변화는 우리가 반드시 주목해야 한다. 대한민국 인구 구조의 변화는 1인 또는 소가구의 꾸준한 확산이다. 이제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생각은 육아에 관한 부담이 더해지면서 하나를 잘 낳아보자는 생각을 지나 이렇게 육아와 교육의 부담이 커지는 환경에서 애를 낳지 않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번지고 있다. 소가구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대가족 또는 4명이 거주하는 공간이 필요할까? 안 그래도 주택 가격은 상식을 벗어나는 수준이다. 이러한 배경은 자연스럽게 공간의 효율을 중시하는 가전을 원할 수밖에 없다. 벽걸이는 그러한 변화의 한 흐름을 잘 보여준다. 최소한 벽에 걸면 그 아래 공간은 다른 용도로 활용할 수 있으니까.
두 번째는 옷의 특성 변화다. 과거 우리의 옷은 세심한 처리를 필요하지 않았다. 면과 나일론 같은 제품을 정성들여 다루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섬유의 종류가 다양해졌다. 어떤 옷은 섬유 유연제를 넣어도 되지만 어떤 옷은 안 된다. 어떤 옷은 땀을 흘린 뒤 바로 빨지 않아도 섬유에 크게 손상이 없지만 어떤 옷은 땀 흘린 뒤 바로 빨아줘야 한다. 최근 아웃도어 옷은 어떨까? 고어텍스 같은 특수한 소재는 일반 옷처럼 다루다간 고유의 기능을 잃기가 쉽다. 한번의 빨래로 모든 옷감을 보호하기에는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빨래를 그때 그때마다 특수한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세탁기가 있다면 편리할 것이다.
이런 환경에 대우 일렉트로닉스는 좋은 대응을 보여줬다. 삼성전자와 LG전자라는 거대 가전사가 진출하지 않은 영역에 진출했다. 덕분에 세계최초라는 이름을 얻었다. 더군다나 세탁기라는 카테고리는 김치 냉장고 같은 한국적 특수 상황에 머무르지 않는 카테고리다. 즉, 세계시장에서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더 큰 성장을 이끌어 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좋은 시작을 보여주고 있다.
관련 기사 - 대우일렉, 눈물의 백화점 재입성(링크)
하지만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바로 대우 일렉트로닉스가 가지고 있는 한계이기도 하다. 기아 스포티지를 기억하는가? 스포티지는 여러분이 단순히 생각할 그런 차가 아니다. 스포티지는 도시형 소형 SUV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개척한 자동차다(관련 글 - 링크).
< 1992년에 세상에 등장한 기아의 스포티지 >
< 1994년에 등장한 도요타의 RAV4 >
< 2007년에 등장한 폴크스바겐의 티구안. 사진은 2세대 >
시작은 스포티지였지만 그것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사이에 RAV4로 넘어가고 이제 그 카테고리의 중심에는 티구안이 자리 잡고 있다. 웬만한 도시형 소형 SUV는 티구안에 얼마나 근접했느냐 또는 어떤 부분을 넘어섰느냐로 이야기를 한다. 이렇듯 새로운 카테고리를 앞선 감각으로 제때에 열었다고 해도 그것을 꾸준히 지켜내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그렇다면 대우 일렉트로닉스의 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1등과 2등 기업이 돈과 인력으로 공세를 퍼붓기 이전에 또 다른 카테고리를 찾아 떠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끝까지 벽걸이 세탁기의 영역을 사수해 최소한 이 분야에서만큼은 표준이 되는 것이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물량 공세와 저가 전략은 오히려 수익성을 악화시킬 뿐이다.
< 세단과 2도어 쿠페의 경계를 허물고 4도어 쿠페라는 카테고리를 개척한 벤츠의 CLS 1세대와 2세대
타 브랜드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지만, 세대가 지나도 그 존재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렇게 역사를 유지하며 공격을 방어하는 것이 브랜드의 힘이고 기업의 역량이다 >
비즈니스 환경을 이해하면 자신이 어떤 카테고리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렇게 자신을 안다면 적어도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방향을 알 수 있다. 1등과 2등처럼 무겁지 않은 3등 기업의 가볍고 경쾌한 움직임으로 카테고리에 대한 흐름의 끈을 놓지 않는다면 우리가 앞으로 대우 일렉트로닉스라는 이름을 더 자주 접하게 될 것이다.
* 이미지는 구글 검색을 활용했습니다.
* 이 글은 아이에데이에 뉴스 스토리 / IT 칼럼에도 기고(링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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