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윤's/┗ 웹 / 콘텐츠 / 플랫폼

SNS, 민주주의, 정보의 평등을 대하는 기업의 자세

by cfono1 2011. 6. 17.
오늘 살펴볼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는 최근의 이슈에 대한 총집합이다. 어제 적었던 글 반값 등록금의 본질과 나아갈 방향(링크)과 그 흐름을 같이 하고 있기도 하다. 

20110615 - 소셜미디어가 여는 새로운 정책환경.pdf

 

SNS는 막강한 파급력을 가진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고 했던가? SNS를 정확히 묘사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이런 SNS의 신속함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찾는데 매우 유리하다. 연예인에 대한 관심사라면 팬클럽을 만드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물건을 싸게 사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공동구매에 도움을 줄 것이다. 이것이 자신의 이익이라는 관점으로 옮겨지면 이익단체의 결집과 해당 이익단체의 정책에 도움을 줄 것이다. SNS 사용자는 곧 유권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SNS는 이익 단체의 의견을 빠르게 정리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럼 이제 이익단체 간의 토론이 시작된다. 누구의 말이 맞고 어떤 것이 더 나은 방향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 토론의 대표 브랜드 100분 토론 >

 

우리는 이 과정에서 두 가지 과정을 거치게 된다.

1. 사회적 합의 도출을 위한 기준 선정에 대한 논의다. 여기에는 기술적 기준과 가치적 기준 모두 포함이 된다. 기술적 기준은 이런 것이다. 아파트 층간 소음을 생각해보자. 입주자는 층간 소음으로 괴로워한다. 아파트 건설사는 입주자가 예민한 것이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기술적 기준이다. 입주자와 건설사 모두 충분한 조사를 한 다음 합리적 기준을 만들고 그 뒤에 입주자가 예민한 것인지 아니면 아파트가 부실한 것인지 살펴봐야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기술적 기준은 산업이 발전하면서 더 많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기존에 없던 서비스와 제품은 말 그대로 기존에 없던 것이기 때문에 새로 기준을 정하면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가치적 기준은 이런 것이다. 정부는 국민의 삶을 책임질 의무가 있다.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받아쓰기 때문이다(국민의 측면에서 본다면 국민의 4대 의무에 대한 대가로 당연히 요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둘 것인지 가치의 기준을 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공창제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보자. 여기에는 성매매라는 행위에 대해 인간으로서 어떻게 사람의 성을 사고파는 것을 국가가 용인하느냐는 인권중심의 가치와 역사이래 이어져 온 없앨 수 없는 인간사의 한 부분인 만큼 차라리 국가의 제도권 내로 들여와 관리하는 것이 낫다는 현실적인 가치가 충돌할 것이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서로의 주장에 대해 비교도 하고 스스로 고민도 하면서 우리 사회에 어떤 가치가 더 나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고민 끝에 대한민국 사회에서 성매매라는 가치에 대한 기준이 정립 될 것이다.

2. 정부의 정보 공개에 대한 논의다. 토론에 대한 가치의 기준을 정했다면 이제 이 기준에 맞는지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 이것을 이익단체가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보다 중립적이며 이들을 포괄할 수 있는 조직이 맡아야 신뢰를 할 수 있다. 정부는 그런 일을 하기에 이상적인 조직이다(현재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정부는 분야마다 이런 각종 실험을 할 수 있는 인력과 장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발생한 데이터를 공개함으로써 이익단체의 토론에 결말을 맺게 해줘야 한다.

이 두 개의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보다 직접 민주주의에 가까운 형태로 발전할 것이다. 


기업은 이러한 흐름에 주목해야 한다. 유권자들의 사회적 쟁점에 관련된 정보에 대한 요구가 받아들여지고 공개가 되는 사회, 이런 사회에서 정보 공개에 대한 요구가 단지 국가에만 그칠까? 유권자는 곧 사용자고 소비자다. 기업의 핵심 영업과 기술적인 부분이 아닌 환경적인 부분과 안전에 관련된 부분은 당연히 정보의 공개를 요구할 것이고 이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소비자는 당연히 분노할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거부하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SNS는 이런 흐름에 촉매제가 되고 있다. 그렇기에 SNS를 쓴다는 것은 이런 흐름에 동참할 의사가 있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SNS를 쓴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기업이 아니다. 이런 단편적인 이해는 오히려 SNS를 안 쓰는 것만 못한 상황을 만든다. 이는 마치 바다 위의 파도만 보면서 바다를 다 이해했다고 자만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눈에 보이는 파도 아래에서 움직이는 해류의 큰 움직임을 이해하지 않는다면 거대한 해류에 휩쓸린 채 어디로 가는지 가늠도 하지 못하는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 이미지는 구글 검색을 활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