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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s/서재

설국열차

by cfono1 2013. 8. 11.



영화를 보고나니 원작이 궁금해졌다. 도대체 무엇을 보고 어떻게 생각을 한 걸까? 그래서 원작을 샀다.

관련 글 - 설국열차(링크)

* 책의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영화와의 공통점
공포의 도구화
영화에서 열차는 바깥의 혹독한 추위를 지켜주는 유일한 장소다. 물론 책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책에서는 한가지가 더 추가되는데 다른 열차와의 충돌이다. 책에서는 비상정차 훈련을 통해 반대파에 대한 제거의 기회로 삼기도 하고 열차와의 충돌에 대비한 연습을 통해 끊임없이 긴장감을 높여 내부의 반란을 무마하는 수단으로 삼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공포는 지배의 프레임이 되고 다른 선택을 잊게 만든다.



- 영화가 더 나았던 점
교육을 통한 세뇌
봉준호의 설국열차에서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윌포드에 대한 찬양과 그의 선견지명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더불어 꼬리칸 사람들의 왜곡된 정보를 교육받는다. 덕분에 꼬리칸 사람들은 사회 구조로 인해 생기는 문제점 때문에 일어난 일들 또한 온전히 그들의 무능함과 게으름의 결과로 생긴 것으로 낙인찍힌다. 그렇게 편견이 자라난다. 그리고 이 방법은 지금도 통하며 쓰이는 방법이다. 특히 독재와 매국의 과거가 있는 곳에서 기본적인 방법으로 통한다. 부정한 과거를 잊게 만들고 그 죄를 추궁당하지 않으며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방법이 아니던가?



- 책이 더 나았던 점
꼬리칸의 병균이 주는 의외의 결말
봉준호의 설국열차에서 커티스와 가장 흡사한 프롤로프는 기차에 붙어서 속도나 줄이는 꼬리칸 사람들을 한 번에 없애려는 지배 계급에 끌려가게 된다. 가장 최신의 정보를 파악한 뒤 적절한 분리시기를 엿보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런 목적을 가지고 그를 불렀으나 역으로 프롤로프가 열악한 환경 때문에 생긴 흑사병 보균자였던 것. 결국, 모두가 죽는다. 공존을 위한 고민 대신 자신이 속한 집단을 위해 타인을 죽이고자 했던 선택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한다.

미디어의 조작
열차에서 각 계층에게 왜곡된 현실과 의도적인 행동을 유도하고자 메시지를 전파할 방법을 찾는데 그것은 미디어 조작이다. 하나의 목소리를 하나의 채널로 공급하며 이것에 대한 의문은 허용되지 않는다. 물론 이때 최대의 효과를 위해 공포를 이용하는 것은 기본이다.



- 영화와의 차이점

성 즉, 섹스는 권력과 빠질 수 없는 관계다. 인간의 기본적 속성에 해당하는데 거기다가 자유가 통제된 곳이라 더욱 그런 면을 가지고 있다. 영화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실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도 성 접대가 있는 것을 볼 때 오히려 책이 더 현실적인 면에 가깝게 다가가지 않았나 싶다.

정치로서의 종교
열차에는 사제 집단이 있다. 기독교, 불교에서 시작한 것이 아닌 열차를 숭배하는 집단이다. 그렇기에 핵심 사상은 바깥의 현실로부터 지켜주는 열차를 잘 유지하는 것이고 그것은 사람들에게 소위 먹혀드는 말이 된다. 근데 문제는 종교라는 게 이성보다는 감성과 믿음이라는 측면이 있기에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규정하는 성격이 있다는 것이다.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으로 상대방을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은 반대파를 공격할 매우 좋은 수단이다.

사이비 혼란으로서의 종교
통제된 상황에서 극히 일부만 공유하는 정보는 그렇지 않은 정보를 가진 사람들에게 역설적으로 의문을 갖게 한다.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상황에서 다른 것을 생각할 여지를 만들어 버리는 거다. 그리고 그것은 공포가 있는 곳에서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켜 버린다. 마치 세기말 종말론 같이 말이다. 결국, 이것 또한 극한 상황에서 도화선 같은 역할을 한다.


한 명의 절대자와 집단 간의 공동 집권체제

봉준호의 설국열차에서는 윌포드가 모든 것을 설정한다. 열차라는 세계에서 윌포드가 신인 것이다. 물론 윌포드는 나중에 진짜 신은 열차고 자신 또한 그 역할에 충실할 뿐이라고 말하지만 말이다(난 이것을 발생한 비인간적인 과정에 대한 회피로 본다). 그러나 원작에서는 정치 집단이 있고 여기에는 열차를 움직이는 기술자 집단, 종교 집단, 정치 집단, 군인 집단 등 각 핵심 세력의 대표자들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집단체제를 유지한다. 독재 시대에서는 봉준호의 설국열차가 더 설득력이 지배 계급으로의 모습을 말하고자 한다면 원작이 더 설득력을 가지지 않을까?




어느 쪽이 좋다고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원작을 읽고 난 뒤 봉준호에게 더 많은 예산과 이야기할 영화 시간이 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피할 수가 없다. 그만큼 이야기할 거리가 많다는 뜻이다. 그랬다면 열차의 초기 이야기와 정치적 집단으로서의 갈등, 인구 조절과 그에 따른 성 문제 등 더 방대하고 재밌는 이야기거리가 풍성했을 것이다. 사회 계급 투쟁과 그것을 깨려는 시도로서의 측면은 봉준호의 설국열차, 사회의 지배 집단(종교, 정치, 인권단체, 빈민, 군인 등)간의 권력 갈등과 그들에게 꼬리칸이 어떻게 보여지는지에 대해서는 원작이 더 좋다고 본다.




* 이미지는 다음 책입니다(링크). 


* 정말 오랜만의 감상문이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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