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미래의 어느 날.
인공지능을 연구하던 사람들이 공격받기 시작한다. 그들을 공격하는 단체는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위협이라는 반과학단체 RIFT. 가장 앞선 인공지능 체계를 연구하던 주인공 윌 또한 공격을 받는다. 방사능 총알로 피해갈 수 없는 죽음을 기다리는 윌. 하지만 그의 동료 과학자이자 연인인 레베카는 또 다른 동료 과학자이자 친구인 맥스의 도움을 받아 윌의 정신을 양자 컴퓨터 기반의 슈퍼컴퓨터로 옮기기로 한다. RIFT의 공격에도 결국 그들은 윌을 컴퓨터 공간에 하나의 지성체로 옮기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제 고민은 시작된다. 어떻게 윌이 윌인지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징크스라는 게 있다. 모두 인간의 정형화된 행동을 말한다. 프로그램이 아니지만, 프로그램처럼 움직인다. 인간의 행동과 사고는 기본적으로는 불확실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하나의 스타일로 고정화되기 시작한다. 만약 이것을 프로그램화하여 컴퓨터로 연결한다면? 우리가 기억하려고 애쓰는 것들을 단 1초도 되지 않아 기억하고 계산하려 했던 것들이 1초도 되지 않아 계산된다면? 모든 정보가 동시 다발적으로 들어와도 다 처리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면? 그런데 그 능력을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전 세계의 네트워크망으로 쓴다면? 그건 신에 가까운 존재가 아닐까?
특히나 윌을 업로드하기 위한 방법으로 단어를 읽는 모습이 나오는데 현명하면서도 기발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단어를 읽을 때 인간의 뇌는 특정 반응을 보이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사랑이라는 단어에서도 누군가는 정신적인 교감을 누군가는 육체적인 사랑을 떠올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 수많은 단어에 대해 그 반응을 입력할 수 있다면 결국 온라인에서 어떤 문장을 접하더라도 그 문장에 대한 인간적인 반응을 보일 수가 있게 된다. 이렇게 이 영화에서는 윌이 초월적 존재로 되는 것에 있어 지성과 감성 모두 인간에 다가서려 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지적한 충돌을 컴퓨터는 이해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떡볶이를 아 씨 더럽게 매워! 하면서도 먹는 행위를 컴퓨터는 어떻게 이해할까? 좋으면서도 싫은 것. 이 모순을 0과 1로 이해하는 컴퓨터는 이해할 수가 없다. 거기다가 좀 더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그냥이라는 행태 또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냥이라는 것에는 논리적인 기반이 없다. 말 그대로 그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그냥이 컴퓨터 지성체가 실행해버린다고 생각해보자. 전력망과 네트워크망, 군사무기에 그냥이라는 것이 실행된다면? 인공지능이 되어버린 윌이 만약 그 그냥이라는 개념으로 자신의 하부로 가져온 하이브리드들을 이용한다면 무엇을 상상하던 끔찍할 것이다.
음성인식과 인공지능, 전력에 대한 고민 등 이 영화에는 많은 개념이 사실적으로 녹아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에 대한 고민도. 하지만 그것을 시각화해서 이야기를 연출하기에는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나노 기술의 힘은 인정하지만, 굳이 그런 식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그래도 좋은 대화 소재를 주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영화였다.
* 이미지는 다음 영화입니다(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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