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은 언제나 권력의 핵심을 담당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대 어느 역사에서도 무력으로 정권을 탈취하면 그다음에 하는 것은 법 정비였다. 그리고 그것을 담당하는 것은 지식이었다. 때로는 종교의 옷을 입기도 했다. 종교의 법리는 글자로 쓰였으며 전달되었다. 이렇게 이어지는 지식은 그것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권력이었다. 글 모르는 까막눈. 이것은 너무나 무서운 것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이런 싸움의 전쟁터는 변했지만, 그 속성까지 변하지는 않았다. 과거에는 지식 권력의 중심에 한자가 있었다. 한자를 아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은 곧 지식 권력에 다가갈 수 있느냐 없느냐로 나뉘었고 그걸 깬 것은 다름 아닌 한자 권력의 핵심에 있었던 왕이었다. 세종은 그 틀을 근본적으로 깨버렸다. 하지만 그 수천 년이 넘게 이어져 온 한자 권력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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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의 한글이 말하는 공유와 소통의 정신(링크)
세종의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헌신 덕에 나는 이렇게 한글로 내 지식과 생각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정보화 시대에 이런 틀은 한자 시대와 많이 바뀌었다.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번역 기술이다. 아직 인간의 UX를 따라가지는 못하지만, 지금이라도 번역 기능을 활용하면 대략적인 문맥을 이해하는 데는 지장이 없을 정도로 번역된다. 이건 인간 역사에서 획기적인 것이다. 과거에는 한자를 아느냐 모르느냐가 지식 권력의 접근에 관문이었지만 이제는 그런 게 없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다른 문제가 나타난다. 바로 전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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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이슈 - 전파에 대하여, 망 중립성(링크)
언어가 지식 권력의 접근에 대한 높이를 낮춰주고 있는 이때에 지식 자체에 접근하는 수단인 전파는 또 다른 지식 권력의 접근에 대한 관문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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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가 항복했다고? 헛물켜는 통신사들(링크)
넷플릭스의 동영상 서비스와 지식 권력은 별 관계가 없어 보일 것이다. 하지만 저런 계기로 인해 전파라는 수단이 어떤 것을 걸러낼 수단으로 바뀌게 되면 그 영향은 모든 것에 미치게 된다. 이런 것을 가정해보자. 만약 교육과 관련된 동영상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이 지식에 접근하는 전파라는 수단에 대한 차별성으로 학생들의 접근권이 불평등해진다면 어떻게 될까? 이는 지식의 불균형을 만들고 지식의 불균형은 소득의 불균형을 만든다. 안 그래도 지금의 사회는 점진적인 개선을 하는 시대가 아닌 산업화 시대에서 정보화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어 매우 혼란스러운 시대이다. 발전의 속도가 굉장히 빠르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에 지식의 불균형으로 만들어진 격차는 따라잡기 굉장히 어렵다.
거기다가 집단지성의 영역으로 들어오면 더 문제는 심각해진다. 각종 인터넷 기기로 연결되는 국민의 지성은 하나의 국가 경쟁력으로 작용하는데 그 경쟁력은 바로 지식수준에서 결정 나기 때문이다. 무엇을 알고 있느냐와 어떻게 표현하느냐와 더불어 그 참여자의 크기를 키우는 것도 중요한데 그 핵심이 바로 지식에 접근하는 전파에 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트래픽 유발하는 사람들이 돈 더 내라 덜 내라의 싸움으로 보일 것이다. 겉으로 보면 그렇다. 하지만 그 이후의 진정한 문제는 전파라는 수단이 운반할 지식의 양과 사용자의 접근이라는 문제가 깊게 자리 잡고 있다. 돈 이전에 사회 전체의 미래라는 관점으로 망 중립성을 봐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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